< 베를린 일기 >
밤은 일찍 오고, 그 밤은 길다. 이곳에서의 나의 일상 대부분은 어둠이 차지한다. 그렇다 해서 이 일상을 거절할 순 없다.
때로 일상은 살고 싶은 대상이 아니라, 살아 내야 하는 대상이다. 하지만 때로 그 일상이 다시 살고 싶은 대상이 되기도 하기에, 살아 내야 하는 오늘을 무시하지 않으려 한다.
소중한 날로 이어지는 다리는 필시 평범한 날이라는 돌로 이뤄져 있을 것이다. 보잘것없는 돌 하나를 쌓은 밤이다.
필요한 날이었다.
열네 번째 날이다.―76쪽
“사람들은 모두 변해. 그렇다고 남을 탓할 수도, 나를 탓할 수도 없어. 단지 우리는 그때마다 자신의 best version으로 변하면 되는 거야.”
worst version이 되고 난 다음 날, 숙취와 수치 속에 이 말이 떠올랐다.―108쪽
그나저나, 지난번 대홍기획 사보에 쓴 글의 주제는 ‘혼자 밥 먹기’였는데, 나는 “아니. 왜, 이런 주제를 나한테 청탁한 건가!” 하며 격분했는데, 곰곰이 따져 보니 그날도, 그 전날도, 그 전전날도 혼자서 밥을 먹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아니. 이렇게 맞춤 양복처럼 딱 맞는 주제가 있나!’ 하며 감탄했다.
하여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논문을 쓸까 하다가 어차피 원고료는 A4 한 장 값만 줄 것이기에, 그 마음을 꾹꾹 눌러 한 장만 썼다.
그나저나 나는 그 원고에 불란서의 사상가 보드리야르의 말을 인용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기근보다 더 슬프고, 거지보다 더 불쌍하게 보이는 것은 많은 사람 앞에서 혼자 밥 먹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광경이다.”
혼자 밥을 먹은 국가만 해도 38개국에 달하는 나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만약 내가 보드리야르가 대학원 다니던 시절, 그의 학과장이었다면, 석사학위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학부도 낙제시켰을 것이다. 단,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은 이런 말을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인간은 고독 속에서 혼자 서는 인간이다.”
만약 내가 스웨덴 한림원장이었다면 그에게 노벨 문학상을 줬을 것이다.
불이 꺼진 텅 빈 연구실에서 혼자 있는 이 밤, 입센만이 내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144쪽
일기를 쓰는 건 자신의 마음이 가고 있는 지도를 스스로 그려 가는 일이다.
지난 한 달간 나는 生에서 人間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아직 생의 종착역까지는 많이 남았다.
내 열차가 너무 많은 승객들로 대화조차 불가능한 것은 곤란하지만, 아무 승객도 없이 그저 운행 일정을 지키기 위해 달리는 열차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종착역은 같지 않더라도,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한 명의 승객이 있었으면 좋겠다.
젠장, 이곳도 가을이다.―162쪽
백림에 와서 무얼 했나 뒤돌아 보니, 일기만 쓴 것 같다. 대충 살자고 해 놓고, 일기를 너무 열심히 쓴 것이다.
일기를 쓴다고 해서 누가 ‘아이고. 최 작가님 고생하십니다’ 하며 계좌 이체를 해 주는 것도 아니고,
국가에서 ‘최 작가. 적성에도 안 맞는 군 복무 하느라 힘들었네. 다음 생에 한국에서 또 태어나면 면제로 해 주지’ 하는 것도 아닌데, 너무 열심히 쓴 것 같다.―2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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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 일기 >
밤은 일찍 오고, 그 밤은 길다. 이곳에서의 나의 일상 대부분은 어둠이 차지한다. 그렇다 해서 이 일상을 거절할 순 없다.
때로 일상은 살고 싶은 대상이 아니라, 살아 내야 하는 대상이다. 하지만 때로 그 일상이 다시 살고 싶은 대상이 되기도 하기에, 살아 내야 하는 오늘을 무시하지 않으려 한다.
소중한 날로 이어지는 다리는 필시 평범한 날이라는 돌로 이뤄져 있을 것이다. 보잘것없는 돌 하나를 쌓은 밤이다.
필요한 날이었다.
열네 번째 날이다.―76쪽
“사람들은 모두 변해. 그렇다고 남을 탓할 수도, 나를 탓할 수도 없어. 단지 우리는 그때마다 자신의 best version으로 변하면 되는 거야.”
worst version이 되고 난 다음 날, 숙취와 수치 속에 이 말이 떠올랐다.―108쪽
그나저나, 지난번 대홍기획 사보에 쓴 글의 주제는 ‘혼자 밥 먹기’였는데, 나는 “아니. 왜, 이런 주제를 나한테 청탁한 건가!” 하며 격분했는데, 곰곰이 따져 보니 그날도, 그 전날도, 그 전전날도 혼자서 밥을 먹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아니. 이렇게 맞춤 양복처럼 딱 맞는 주제가 있나!’ 하며 감탄했다.
하여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논문을 쓸까 하다가 어차피 원고료는 A4 한 장 값만 줄 것이기에, 그 마음을 꾹꾹 눌러 한 장만 썼다.
그나저나 나는 그 원고에 불란서의 사상가 보드리야르의 말을 인용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기근보다 더 슬프고, 거지보다 더 불쌍하게 보이는 것은 많은 사람 앞에서 혼자 밥 먹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광경이다.”
혼자 밥을 먹은 국가만 해도 38개국에 달하는 나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만약 내가 보드리야르가 대학원 다니던 시절, 그의 학과장이었다면, 석사학위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학부도 낙제시켰을 것이다. 단,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은 이런 말을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인간은 고독 속에서 혼자 서는 인간이다.”
만약 내가 스웨덴 한림원장이었다면 그에게 노벨 문학상을 줬을 것이다.
불이 꺼진 텅 빈 연구실에서 혼자 있는 이 밤, 입센만이 내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144쪽
일기를 쓰는 건 자신의 마음이 가고 있는 지도를 스스로 그려 가는 일이다.
지난 한 달간 나는 生에서 人間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아직 생의 종착역까지는 많이 남았다.
내 열차가 너무 많은 승객들로 대화조차 불가능한 것은 곤란하지만, 아무 승객도 없이 그저 운행 일정을 지키기 위해 달리는 열차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종착역은 같지 않더라도,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한 명의 승객이 있었으면 좋겠다.
젠장, 이곳도 가을이다.―162쪽
백림에 와서 무얼 했나 뒤돌아 보니, 일기만 쓴 것 같다. 대충 살자고 해 놓고, 일기를 너무 열심히 쓴 것이다.
일기를 쓴다고 해서 누가 ‘아이고. 최 작가님 고생하십니다’ 하며 계좌 이체를 해 주는 것도 아니고,
국가에서 ‘최 작가. 적성에도 안 맞는 군 복무 하느라 힘들었네. 다음 생에 한국에서 또 태어나면 면제로 해 주지’ 하는 것도 아닌데, 너무 열심히 쓴 것 같다.―2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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